사업개발의 정수,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 파트너십'의 키맨 찾기
탁월한 사업개발, 창업가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나보다 큰 상대와, 큰 거래를 꼭 마쳐보세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게 될 겁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회사에서 DA팀에 웬만한 내용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8시 갱신되는 내부 DB와 연결된 AI 에이전트에 웬만한 내용은 '자연어로 요청'합니다.
저 역시 명절 연휴를 틈타 저의 사고와 글을 카피하는 에이전트를 만들어보기도 했죠. 하지만 여전히 AI가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의 역할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Deal'을 하는 순간입니다.
사업개발(Business Development)의 경계는 정말 넓습니다. 사업개발 직무 유형에서도 정리한 바 있지만,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파트너십("제휴"라고도 불리우는..)'와 '세일즈'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죠. 특히 연 매출이 1,000억 이상 중견 이상 큰 기업("엔터프라이즈")을 대상으로 판을 짜는 역할은 사업개발의 숙명입니다.

엔터프라이즈와의 Deal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굉장히 많고, 복잡해서 예측가능성이 떨어집니다. 불확실성을 가장 잘 견디고 일이 되게하는 '사업개발' 관점이 필수적입니다. 그점에서 엔터프라이즈 기업과의 Deal은 사업개발의 정수라고 할만합니다. 그들에 비해 우리는 보통 작습니다. 우리의 제안을 '공식 창구'(제휴 페이지 대표전화)에 넣는 것으로 일이 추진될 리가 없습니다.
엔터프라이즈 Deal의 핵심은 '휴민트'(사람을 통한 정보활동/네트워크)을 구축하고, 구심점이 될 '챔피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겁니다.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제품의 우수성도, 가격 경쟁력도, 완벽한 제안서도 아니에요. 고객사 내부에서 우리와 함께 싸워줄 사람,챔피언(Champion)이 있느냐 없느냐예요.
챔피언이 없는 엔터프라이즈 딜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갑자기 길이 막혀도 우회할 방법을 모르죠. 오늘은 이 챔피언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육성하는지 생각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키맨 / 챔피언은 누구인가: 호의적인 담당자와의 차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담당자와 챔피언(키맨과 혼용하여 쓰겠습니다.)은 달라요. 호의적인 담당자는 미팅에 잘 나오고, 자료 요청에 잘 응해주고,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해줘요. 하지만 내부 회의에서 직접 우리 제안/제품을 밀어주지는 않습니다.
챔피언은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에요.
- 1) 개인적 이해관계(Personal Win)가 있어요. 우리 제품이 도입되면 이 사람의 업무가 좋아지거나, 성과가 올라가거나, 승진에 도움이 돼요. 단순히 "회사에 좋을 것 같다"가 아니라 "나에게 좋다"는 동기가 있어야 해요. 상대가 리더십이라면 회사의 Top-down 어젠다에 우리 제안이 부합해야하고요.
- 2) 내부 영향력(Influence)이 있어요. 의사결정자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최소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요.
- 3) 적극적으로 행동(Active Selling)해요. 우리가 없는 자리에서도 우리 제안/제품을 설명하고, 내부 반대를 설득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여요. 챔피언은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가 없는 회의실에서 싸워주는 사람이에요.
항상 Deal에는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통신 3사와의 Deal 과정에서 제가 경험한 대기업 내 '일잘러'와의 소통 방법은 다음 글에 적어두었습니다. 보통 키맨들은 '일잘러'거나 일잘러를 가까이에 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청 신뢰합니다.

아무튼, 제가 실제로 경험한 바로는, 엔터프라이즈 Deal에서 챔피언이 있는 것과 없는 deal의 성공 확률은 3배 이상 차이가 나는듯합니다. 그래서 항상 팀에서는 파이프라인 리뷰할 때 항상 "이 deal에 챔피언이 있어?"를 첫 번째로 물어봐요. 챔피언이 없으면 deal이 아니라 희망사항이에요.
📍챔피언을 찾는 3가지 시그널 : '친절함'과는 다르다..!

그러면 미팅 중에 누가 챔피언 후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저는 3가지 시그널을 봐요.
- 1) 질문의 깊이가 다름. "판을 짜는 역량이 있음"
보통의 실무자는 "이 기능 있어요?", "도입하면 뭐가 좋아요?"처럼 표면적인 질문을 해요. 하지만 챔피언 후보는 "이 기능을 우리 기존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해요?", "도입하면 우리 팀 워크플로우가 어떻게 바뀌어요?" 같은 질문을 해요. 리더십이면, Top-down 과제와의 전략적 호응을 보겠고요. 이들은 자기 조직의 맥락 안에서 우리 제안의 자리를 이미 그리고 있어요. 반대로 우리와 하면 좋을 제안을 해주기도 하죠. - 2) 내부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유함.
"사실 우리 내부에서 이 문제 때문에 작년부터 논의가 있었어요", "경쟁 제품도 검토했는데 A 부분이 부족했어요", "결재 라인이 이렇게 돼요." 이런 정보는 물어봐도 안 알려주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건 이 딜이 성사되길 원한다는 신호로 봅니다. - 3) 다음 스텝을 스스로 제안함
"다음에 우리 00 팀장님도 같이 미팅하면 좋겠어요", "내부 제안서에 넣을 자료 보내주실 수 있어요?", "POC 일정을 잡아볼게요." 다음 액션을 상대방이 먼저 제안하면, 이 사람은 이미 내부에서 이 딜을 밀고 있는 거예요.
특히 2, 3번 관점에서 조직 내 위계가 높은 분은 계속 관련 팀장 / 실무자를 계속 호출(?)하기도 하는데, 실무 조직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한 번에 일이 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 봅니다.
탁월한 사업개발 담당자는 위 시그널들을 놓치지 않고 미팅 밖에서도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키맨과 계속 편하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걸 '백 브리핑'이라고 표현합니다.
📍MEDDIC: 키맨 / 챔피언 중심의 세일즈 프레임워크

챔피언을 중심으로 엔터프라이즈 딜에서 고려할 필수 조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프레임워크가 있어요. 1990년대에 PTC라는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만들어진 MEDDIC인데요. 당시 PTC는 이 프레임워크를 도입한 뒤 매출을 300M에서 1B 달러로 끌어올렸죠. 저에게도 큰 배움이 있었던 개념이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MEDDIC : 모든 것은 결국 'C'통합니다.
- M - Metrics: 고객이 측정하는 성과 지표. 우리 제품이 어떤 숫자를 움직여줄 수 있는지.
- E - Economic Buyer: 최종 예산 승인권자. 누가 결제 버튼을 누르는 사람인지.
- D - Decision Criteria: 고객이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 가격인지, 기능인지, 보안인지.
- D - Decision Process: 의사결정이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누가 언제 어떤 순서로 결정하는지.
- I - Identify Pain: 고객의 핵심 고통.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어떤 비용이 발생하는지.(저는 '문제 해결'을 통해 얻을 이익으로도 생각합니다)
- C - Champion : 내부 지지자.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키맨을 의미함.
여섯 가지 중 마지막 C(챔피언)가 나머지 다섯 가지를 연결하는 핵심입니다. Metrics를 알려주는 것도 챔피언, Economic Buyer에게 우리를 소개해주는 것도 챔피언(혹은 챔피언이 결정권자일 수도 있죠.), Decision Process를 공유해주는 것도 챔피언이에요. 챔피언 없이 나머지 다섯 가지를 파악한다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잊지말자 : 그들이 왜 우리를 도와야하는가?

키맨 / 챔피언이 우리를 위해 내부에서 싸워주는 건 우정 때문이 아닙니다.('친구비' 때문에 N천/억을 태워?) 이 딜이 성사되면 자기에게도 좋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챔피언을 키우는 핵심은 이 사람의 개인적 이익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걸 우리 제안의 가치와 연결시키는 거예요.
이렇게 해봅시다.
- 1) 무기를 함께 만듭니다.
챔피언이 내부에서 우리를 설명할 때 쓸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줘요. 1장짜리 요약, 레퍼런스 조사 자료, 경쟁 비교표 등 챔피언이 빈손으로 보고에 들어가게 하면 안 돼요. 구체적인 숫자와 자료로 무장시켜야 해요.
대기업 측 선수는 개념 압축도 잘하고, 이를 말로도 특히 글로도 잘 구성 합니다.(이른바 ‘기획통’이죠)
그런데 이 기획 선수도 ‘우리 쪽 사정’에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팁을 몇 개 드리자면
- 이때 가장 중요한 게 깊고 잦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상호 결제라인(리더십)의 관심사와 중요 과제를 파악하는 겁니다.
- 그쪽 ‘선수’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문서는 제대로 안나옵니다. 형식만 갖춘 이상한 문서가 됩니다.
- 저는 이때 가급적 상대 측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1) 지표를 정리, 2) 아이디어를 제안, 3) SaaS 시장 동향 등을 정리해서 줍니다.
- 기왕이면 보고하기 좋게 이메일에 불렛으로 찍어서 드립니다. 그렇게 하면 내부 회람이 되면서 참조 받는 중간 리더급까지는 금방 배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지막 리포트 압축 과정에서 상대 측 선수들에게 감탄한 적이 많습니다. (본사 기획 부서 분들의 실력은 진짜 놀랍습니다. 늘 배웁니다.)
이 ‘기획통’들은 훗날 임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2) 성과는 키맨 / 챔피언의 것입니다.
Deal이 성사되고, 실제 클라이언트 차원의 성과가 나면 챔피언의 공이에요. 이 사람이 좋은 의사결정을 이끌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드러내야 합니다. 추가로 새로운 기회들이 열릴 때 우리의 키맨 /챔피언은 기꺼이 우리를 도울 겁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 분의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겠지요. - 3) 진행 과정에서 '정무 역량', '신뢰자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모든 역량 중에 가장 성장 시키기 어렵고, 희소한 역량이 '정무 역량'인듯 합니다. 우리가 흔히 '정치'를 한다고 말하지만, 정치는 '희소자원을 배분하는 규칙을 결정'하는 과정 그 자체로 꼭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닙니다. 정치에서 끝내 이기는 역량이 정무역량이라면, 우리의 키맨은 정무역량이 탁월해야합니다.
키맨의 조직 내 승리를 도웁시다. '나의 요청'이 상대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방향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해봅니다. 기존 관성과 싸워야하는 챔피언의 신뢰자원을 소중하게 생각합시다. '타이밍'과 '메시지'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언젠가는 AI가 로보틱스의 몸을 입고, 현장에서 '나 대신 Deal'을 하는 미래가 오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닙니다. 가장 탁월한 사람에게도 어려운 것이 이상의 'Deal을 만들고 끝내는 역량'입니다. 그만큼 가장 늦게 대체될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탁월한 사업개발, 창업가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나보다 큰 상대와, 큰 거래를 꼭 마쳐보세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게 될 겁니다.

